카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 소설을 처음 보자마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똑같은 제목, 하지만 그 앞에 '신(新)'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는 것, 그 모두가 우리들의 궁금증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책을 펼쳐들면, 그 속에는 예전 <설국>에서 보았던 그 경치가 다시 한 번 독자의 눈 앞에 펼쳐집니다. '설국'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이야기,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신·설국>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주인공인 '시바노'는 기차로 여행을 하던 도중 묘한 충동에 이끌려 설국의 배경이었던 츠키오카(月岡)에서 내리고, 거기에서 게이샤(藝者)인 '모에코'를 만나게 됩니다. 도입부의 그것부터 <설국>을 연상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미리 염두에 둔다면, <설국>에서 주인공이 "이 손가락이 당신을 가장 잘 기억하고 있었지" 라고 말한 것에 대답하는 듯한 모에코의 "어차피 못된 장난을 하는 손가락이잖아요." 라는 대사 또한 그저 흘려 들을 수만은 없을 듯합니다. 모에코 자신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최후의 고마코(駒子)' 라고 불리우고 있다는 것도, 말하자면 <설국>이라는 작품에 보내는 일종의 리스펙트(respect)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지 거기에서 머물러 있었다면 그저 설국의 오마쥬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작품 내에서 시바노와 모에코는 손님과 게이샤라는 관계에 머무르면서도 오히려 다른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습니다. 시바노의 경우는 '회사를 쓰러트리고 나서 도피 여행을 왔다' 라는 자신의 처지를, 모에코는 오히려 그보다 더 나아가 자신의 불운했던 가정환경이나, 사랑, 첫경험, 어두웠던 과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시바노에게 이야기합니다. 언뜻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오히려 '그런 관계' 였기 때문에 둘 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라고 말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말하자면 일종의 계약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각자 일정한 선이 있고, 그런 만큼 상대가 자신의 영역 속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이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와의 거리가 좁으면 좁을수록 서로에게 그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것은 때때로 상대방에게 있어 부담으로써 다가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시바노와 모에코의 경우, 각자 '자신의 처지에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흉금을 드러낼 수 있게 했던 수단이 된 게 아닐까 합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급속하게 가까워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후의 일인 만큼 오히려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결국 이별하게 되는 것도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까워지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역설적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와 반대로 처음부터 너무 가깝게 있다 보면 오히려 서로간의 거리를 더욱 크게 느끼게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햅니다. 사람은 객체적인 존재인 만큼 상대의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단지 더듬듯 손을 내밀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 갈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거리'라는 것은 말하자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유예라고 생각합니다. 손을 내밀었을 때 서로 스치지 않고 정확하게 그 손을 맞잡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간격이 필요할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