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8.

편지를 써요 2008/03/10 21:23

  노나메 님에게.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기분입니다. 잘 지내시고 계신가요? 근 1년만에 드리는 편지라서 그런지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하기야 어쩔 수 없겠지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우연찮게도 어떤 분(역시 익명이십니다)께서 말씀해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이 편지를 쓸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지도 몰라요! 앞으로는 정말 가끔이나마, 혹은 짧게나마 다시 조금씩 편지를 써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얼마나 불성실한 제 자신일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사실 최근에는 조금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알고 싶으세요? 그럼 조금이나마 이 편지에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보세요!

  최근 저는 사회인으로 탈바꿈했습니다. 1년 전만 해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멍하니 풀을 뜯고 있는 양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뭐랄까―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말이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혹은 그 말 위에 타고 있는 기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어떤 일인지는 아직 비밀입니다. 제 자신의 기반을 확실히 다진 뒤에야 비로소 부끄러움 없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쨌든 사회 초년생의 입장은 굉장히 미묘합니다. 말하자면, 굉장히 높은 두 탑 사이에 한 줄기 밧줄이 걸려 있고, 그 위를 긴 장대 하나만을 의지한 채 균형을 잡고 건너야 하는 삐에로와 같은 처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을 조금이라도 헛디디면 끝장입니다. 그리고 발 밑을 바라봐서도 안 됩니다. 눈이 빙글빙글 돌아서 아예 한 걸음도 디딜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그저 저 멀리 앞을 바라보면서 휘청거리며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뒤로 돌아온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노나메 님이 그런 기분을 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회인이란 정말 그러한 것입니다. 일단 열심히 배우면서 스스로에게 맡겨진 직책에 충실하려 노력합니다만,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실수도 자주 하곤 합니다. 아직은 멀었다는 뜻이려나요.

  자, 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최근 제 근황을 조금 이야기해 볼까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이시다 이라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와 같은 작가의 최신작 <빅 머니>입니다. 전자는 예전에 읽었던 적이 있었고, 후자는 이번에 처음 읽은 책입니다. 느낌은…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이시다 이라의 다른 소설도 대부분 모두 읽었습니다만, 이 작가의 소설은 한 번도 절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무엇보다 다루는 주제가 상당히 폭넓습니다. 위에 언급한 두 소설도 전혀 다른 소재를 가지고 쓴 소설입니다. <이케부쿠로>는 도쿄 선샤인 거리를 중심으로 한 약간 일탈한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후자는 마켓―즉 금융거래의 현장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생각하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걱정은 필요없습니다. 이시다 이라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와 간결하면서도 특징적인 필체를 앞에 두면, 어느새 그런 생각은 깨끗히 잊은 채 소설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요시모토 바나나의 팬을 자처해 왔는데, 지금은 이시다 이라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바나나가 싫어진 건 아니지만, 취향이 달라진 것일까요? 바나나 특유의 정적이고 네거티브한 감성보다는 이시다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혼자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따져 보면 약 4년 전에 구상했던 소재입니다만, 쓰게 된 건 최근이에요. 어떤 이야기라고 생각하세요? 제목은 <평행세계>입니다. 저것만 보면 골치아픈 과학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건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또 다른 나' 를 만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 둘은 성격도, 성별도 정 반대입니다. 마치 거울에 비친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분명히 자기 자신과 전혀 다른 게 없지만, 어떻게 보면 좌우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 소설은 이런 서두로 시작한답니다.


  『나는 경악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고 예기치조차 못했다. 눈 앞에서의 갑작스러운 폭발, 매캐한 연기가 눈 앞을 가리는 바람에 대체 무슨 일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매운 냄새에 눈물과 콧물이 사정없이 새어나오며 기침이 쉴새없이 터져나오는 것을 어찌할수 없었던 나로서는 그저 눈을 꼭 감은 채 코와 입을 감싸는 것이 전부였다.
  이윽고, 연기가 서서히 걷히고 내가 눈을 뜨자, 눈 앞에는 낯선, 하지만 왠지 친숙한 얼굴을 한 여자애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때요? 제법 흥미롭지 않나요? 혹시 관심이 가신다면 '메모장'으로 와 주세요. 현재 4화 1편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만(소설을 쓸 시간을 내기가 힘들거든요), 전개는 이미 정해져 있는 만큼 조만간 써서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괜찮다면 응원해 주세요.

  *   *   *

  요즘은 날씨가 제법 따뜻해진 것 같습니다. 봄이 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황사가 심한 것은 골치입니다. 그 탓에 감기도 더 쉽게 오는 것 같네요. 제 친구 중 하나는, 하필이면 이 시기에 독감에 걸려서 꼬박 일주일을 집에서 병원도 못 간 채 끙끙 앓았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제법 좋아진 것 같긴 합니다. 사실 황사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의 일교차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환절기라는 건 참 큰일이군요!

  하지만 이것도 봄이 오는 징조라고 할 수 있겠지요. 4월 중순쯤에 꽃이 개화한다고 합니다. 올해에도 누군가와 함께 벚꽃을 보러 가고 싶네요.
  이번 편지는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조만간 또 편지로 찾아뵐께요.


  2008년 3월 10일, 때늦은 새해 인사를 보내며, 이피.


  P.S : 오늘 PC용 스피커를 새로 샀습니다. 근데 고음 부근에서 잡음이 좀 들리는 것 같아 약간 우울해지네요. 쓰다 보면 좀 나아질까요?

TAG
1 2 3 4 5 6 7 8  ... 25 

글 보관함

카운터

Total : 139,945 / Today : 6 / Yesterday : 24
get rss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