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 30
친애하는 노나메 님에게.
노시보 효과라는 것을 알고 있으세요?
갑작스레 질문으로 편지를 시작하는 게 좀 쌩뚱맞긴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노시보 효과란, 즉 말하자면 타인에 의한 부정적인 암시가 실제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암시에 의한 결과인 플라시보 효과와는 상반된(하지만 이론은 같은) 효과라 할 수 있지요. 왜 갑자기 이런 소리를 꺼냈느냐 하니―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가 그 사람에게 그만큼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어쩌면 그것은 '근묵자흑', 즉 노시보(혹은 플라시보) 효과의 결과로써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그 자신 또한 자신도 모르게 변화되는 것이죠.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아니면 나쁜 방향이든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저는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제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노나메 님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볶음밥을 좋아합니다. 볶음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양한 반찬을 먹기보다는 한 두가지의 찬을 가지고 빨리 식사를 마치길 좋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이었어요. 그냥 방금 전 그렇게 생각해 보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왠지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볶음밥은 밥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한데 볶아 밥 속에 재료의 풍미를 흡수시켜 조화로 이끄는 것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볶음밥을 먹을 때에는 굳이 다른 반찬을 옆에 놓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수저를 입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볶음밥에 여섯 개 이상의 재료를 넣는 일은 드물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으려 하면 오히려 전체적인 조화를 깨게 될 뿐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나라는 밥상 위에 수많은 반찬을 올려 놓고 밥과 함께 먹잖아요? 그것은 볶음밥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밥과 반찬은 기본적으로 1:1의 관계입니다. 밥 위에 두 가지 이상의 반찬을 같이 올려서 먹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쌈이나 비빔밥 등은 별개로 치자구요) 그런 다양한 1:1을 즐기는 것이 우리 식의 식사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볶음밥과는 당연히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그런 만큼, 볶음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다양한 반찬과의 관계를 하나 하나 추구하기보다는, 많지 않은 몇 가지의 반찬을 가지고 그것을 전체적으로 조율하여 식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떨까요? 음, 아니라고요? 하지만 그럴듯하게 생각되지 않으세요?
이야기가 오늘도 통통 튀어다니네요. 그다지 편지를 많이 쓴 건 아니지만, 노나메 님도 어지간히 질리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생각의 흐름에 맞춰 편지를 적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화제는 저 멀리로 달려가서 손짓을 해 보입니다. 거기에 맞춰 죽어라 뛰어가서 헥헥거리다 보면, 화제는 또 저기 저 편으로 가서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것이죠. 이영도 씨의 단편인 <오버 더 호라이즌> 을 보면 '수다의 궁사들이 화제를 그들의 혀에 걸고 저기 저 먼 곳을 향해 쏘아붙혔다.' 라는(기억에 의존하고 있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유가 나옵니다. 과연 감탄할 만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오버 더 호라이즌>에는 그 외에도 꽤 볼만한 묘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어제 내리다 그친 눈이 치우다 만 비누거품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라던가, "나는 침묵의 동토에 힘차게 첫 삽을 내리꽂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께서 시제품에 누락된 기능이 포함된 최신형 육신을 내려주실 확률은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피곤에 지친 내 몸을 이끌고 보안관의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같은 것들 말이죠. 아, 물론 100%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력을 용서해 주세요. 어쨌든 이영도 씨의 소설은 그만큼 매력적입니다. 대표작인 <드래곤 라자>만이 흔히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오버 더 호라이즌>이라는 연작 단편소설 또한 <드래곤 라자>에 비견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객관적인 평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요. 하하.
그러고 보니 근황을 말씀드리는 것을 잊었는데, 요즘은 노나메 님 외에도 편지를 쓰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비밀입니다만(이런 건 혼자 간직하는 게 더 즐거우니까요), 편지를 쓴다는 건 언제나 잔잔한 즐거움을 동반하는 일이지요. 그런 점에서 요새는 이래저래 즐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구해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요즘의 일상에서 마이너스적 일의 주 근원이라면 바로 저 부분일 것 같네요. 3월부터는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할 테고, 한 달 정도만 짧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전부터 여러 번 얘기했지만 거의 없다시피 하네요. 요즘 사실 약간 감기 기운도 생기고 해서 전단지 알바는 선택보류입니다. 어쩌면 이대로 또 한 달이 쭉 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조금… 설마?
그럼 이번 편지는 이 정도에서 줄이겠습니다. 전에 썼던 편지에서 의자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은근히 비싸다는 게 제 발목을 잡고 있네요. 재활용 매장에 문의해 봐도 하이팩 사무 의자가 2만 8천원이라는 답변에 약간 좌절하고 있습니다. 편한 의자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고민만 계속해서 이어지네요.
친애하는 노나메 님에게.
노시보 효과라는 것을 알고 있으세요?
갑작스레 질문으로 편지를 시작하는 게 좀 쌩뚱맞긴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노시보 효과란, 즉 말하자면 타인에 의한 부정적인 암시가 실제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암시에 의한 결과인 플라시보 효과와는 상반된(하지만 이론은 같은) 효과라 할 수 있지요. 왜 갑자기 이런 소리를 꺼냈느냐 하니―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가 그 사람에게 그만큼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어쩌면 그것은 '근묵자흑', 즉 노시보(혹은 플라시보) 효과의 결과로써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그 자신 또한 자신도 모르게 변화되는 것이죠.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아니면 나쁜 방향이든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저는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제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노나메 님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볶음밥을 좋아합니다. 볶음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양한 반찬을 먹기보다는 한 두가지의 찬을 가지고 빨리 식사를 마치길 좋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이었어요. 그냥 방금 전 그렇게 생각해 보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왠지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볶음밥은 밥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한데 볶아 밥 속에 재료의 풍미를 흡수시켜 조화로 이끄는 것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볶음밥을 먹을 때에는 굳이 다른 반찬을 옆에 놓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수저를 입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볶음밥에 여섯 개 이상의 재료를 넣는 일은 드물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으려 하면 오히려 전체적인 조화를 깨게 될 뿐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나라는 밥상 위에 수많은 반찬을 올려 놓고 밥과 함께 먹잖아요? 그것은 볶음밥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밥과 반찬은 기본적으로 1:1의 관계입니다. 밥 위에 두 가지 이상의 반찬을 같이 올려서 먹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쌈이나 비빔밥 등은 별개로 치자구요) 그런 다양한 1:1을 즐기는 것이 우리 식의 식사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볶음밥과는 당연히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그런 만큼, 볶음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다양한 반찬과의 관계를 하나 하나 추구하기보다는, 많지 않은 몇 가지의 반찬을 가지고 그것을 전체적으로 조율하여 식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떨까요? 음, 아니라고요? 하지만 그럴듯하게 생각되지 않으세요?
이야기가 오늘도 통통 튀어다니네요. 그다지 편지를 많이 쓴 건 아니지만, 노나메 님도 어지간히 질리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생각의 흐름에 맞춰 편지를 적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화제는 저 멀리로 달려가서 손짓을 해 보입니다. 거기에 맞춰 죽어라 뛰어가서 헥헥거리다 보면, 화제는 또 저기 저 편으로 가서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것이죠. 이영도 씨의 단편인 <오버 더 호라이즌> 을 보면 '수다의 궁사들이 화제를 그들의 혀에 걸고 저기 저 먼 곳을 향해 쏘아붙혔다.' 라는(기억에 의존하고 있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유가 나옵니다. 과연 감탄할 만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오버 더 호라이즌>에는 그 외에도 꽤 볼만한 묘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어제 내리다 그친 눈이 치우다 만 비누거품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라던가, "나는 침묵의 동토에 힘차게 첫 삽을 내리꽂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께서 시제품에 누락된 기능이 포함된 최신형 육신을 내려주실 확률은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피곤에 지친 내 몸을 이끌고 보안관의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같은 것들 말이죠. 아, 물론 100%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력을 용서해 주세요. 어쨌든 이영도 씨의 소설은 그만큼 매력적입니다. 대표작인 <드래곤 라자>만이 흔히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오버 더 호라이즌>이라는 연작 단편소설 또한 <드래곤 라자>에 비견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객관적인 평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요. 하하.
그러고 보니 근황을 말씀드리는 것을 잊었는데, 요즘은 노나메 님 외에도 편지를 쓰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비밀입니다만(이런 건 혼자 간직하는 게 더 즐거우니까요), 편지를 쓴다는 건 언제나 잔잔한 즐거움을 동반하는 일이지요. 그런 점에서 요새는 이래저래 즐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구해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요즘의 일상에서 마이너스적 일의 주 근원이라면 바로 저 부분일 것 같네요. 3월부터는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할 테고, 한 달 정도만 짧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전부터 여러 번 얘기했지만 거의 없다시피 하네요. 요즘 사실 약간 감기 기운도 생기고 해서 전단지 알바는 선택보류입니다. 어쩌면 이대로 또 한 달이 쭉 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조금… 설마?
그럼 이번 편지는 이 정도에서 줄이겠습니다. 전에 썼던 편지에서 의자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은근히 비싸다는 게 제 발목을 잡고 있네요. 재활용 매장에 문의해 봐도 하이팩 사무 의자가 2만 8천원이라는 답변에 약간 좌절하고 있습니다. 편한 의자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고민만 계속해서 이어지네요.
2007년 1월 30일, 미열을 느끼며, 이피.
P.S : 최근에 점점 잠이 늘어나고 있는 기분입니다. 곤란하네요.
P.S : 최근에 점점 잠이 늘어나고 있는 기분입니다. 곤란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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